2018년의 마지막 날, 참으로 참담한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한분이 환자가 휘두른 칼에 가슴을 수십차례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두가 경악했고, 또 모두가 한마음으로 회복을 염원했지만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과 남겨진 유가족의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을 생각하니 비통함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번일은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지난 2017년 5월, 수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입원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돌봄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환자를 치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법이었습니다.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환자 자신과, 사회의 안전망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정신과 의사들의 우려는 묵살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가가 아닌, 병원과 보호자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집행하는 기형적인 강제입원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환자를 가두는 주체가 되어 치료의 시작부터 신뢰는 깨어지고, 의사는 환자의 적이 되어 버립니다. 입원치료는 잠재적인 범죄로 치부되어 그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환자는 치료적 도움과 돌봄을 받을 시설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사회로 내몰리게 됩니다.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잘 치료받은 정신질환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보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환자는 치료받을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의사는 안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환자와 의사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두에게 불행하고 슬픈 일입니다.
병마에 사로잡혀 자신의 치료받을 권리마저 놓아버린 이들을,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한 줌 희망을 가지고 붙잡는 것이 정신과 의사가 가진 작은 사명입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삶을 살고 싶어하신 고인의 뜻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이 일을 도와달라는 것, 이것이 남겨진 정신과 의사들의 바람입니다.
. 작금의 강제입원제도를 폐지하고, 국가가 치료를 보장하는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해 주십시오.
. 지역사회에 환자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 주십시오.
.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 신속히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를 통해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치료를 보장하고, 환자와 사회, 국민의 안전을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요청이 더이상 예산과 인력의 부족이라는 논리에 부딪혀 순진하고 헛된 소망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귀기울여 주십시오.
비통한 오늘의 슬픔이 이 땅의 모든 환자와, 그들의 가족과, 그들을 치료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으로 바뀔 그 날을 고대하며 치료에 헌신하신 고인과 그 유가족분들께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2019년 1월.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회장 김지민 올림.